2008년 01월 14일
月光影(월광영) … 그림자(影) 들어가기
달과 빛과 그림자.
들어가기. - 影 (그림자 영, 정후겸)
차가운 파도소리가 들려온다. 차갑다. 뺨을 스치는 바람이 매섭다.
후겸은 바람에 붉게 긁힌 뺨을 감싸며 이를 다져 물었다.
후겸의 아비는 선이 굵은 팔에 그물과 갓 잡아 올린 생선이 가득 들은 망태기를 짊어지고 배어서 내렸다. 종일 흔들리는 배 위에 생활하는 그는 육지에 내려서자 휘청이는 걸음을 가누지 못해 모양새가 흡사 취객(醉客)과 같았다.
한참을 걸어오던 그는 자신의 앞에 날이 선 눈으로 버티고 있는 후겸을 보고 멈추었다. 후겸의 눈에는 야망과 독기가 있고, 그는 그것을 짐짓 모른척하며 후겸을 향해 입을 열었다.
- 이제 이 아비에게 물질 배울 마음이 생긴 것이냐?
- 아닙니다.
- 이 바닥에 태어난 니가 먹고 살려면 이 짓 밖에 할 게 없는데도 여태 고집을 피우는구나.
꾸짓듯 엄하게 변한 표정에도 후겸은 굴하지 않았다.
- 나는 아버지처럼 살지는 않을 겁니다. 나는 조선의 수많은 백성 중에 하나로만 살다 죽지는 않을 겁니다!!
악을 써댄 후겸은 바닷빛에 그을린 아비를 노려보다 이내 뒤돌아 가버렸다. 후겸의 뒷모습을 눈으로 쫓던 아비의 눈에 자식을 보는 안타까움이 서린다.
자신의 아들은 또래 아이들에 비해 유달리 두뇌가 명석하였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내다본다는 말에 걸맞는 아이였다. 부모 된 마음이라면 저렇듯 명석함과 야망을 두루 갖춘 자식을 큰물에 놀게하는 것이 옳겠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아니, 그럴수가 없었다.
경종임금의 숱한 의문만 남긴 죽음 후 현재의 임금이신 영조께서 그 정세를 가다듬었다고 하나 여전히 불운의 기운이 감도는 것이다. 거기다 보위를 이을 세자(훗날 사도세자)의 광증을 비롯 궁궐 세도가들 사이에 온갖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는 이 시대에 아무리 아들이 잘 났다하여 그곳으로 보낼 수는 없는 것이다.
아들이 사라진 길을 보며 한숨을 짓던 그는 집을 향해 비틀거리는 걸음을 간신히 가누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집에 당도한 그는 그물과 망태기를 마당 한켠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을 때 그의 앞에 있는 이는 참으로 낯이 익었지만, 잊고 살고자 했던 사람이었다.
-오랜만..이예요.
그의 아내. 이화였다. 젊은 시절 후겸을 가졌을 때 서로의 손을 잡고 야반도주를 했었다. 서인이었던 그와 양반이었던 이화의 신분차이로 인해 그대로 있다가는 몰매를 맞고 아이와 두 사람 모두 죽었을 것이다.1) 그렇게 도망 와서 이 허름한 어촌에 터를 잡고 후겸이를 낳았었다. 하지만 양반댁 아씨로 살아왔던 이화는 어촌생활에 적응을 못하였고 결국 후겸이 4살 되던 해 집을 떠나 한양으로 향하였다. 그 뒤로는 소식이 없던 그녀가 갑자기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이다.
- 아이를..데리러 왔어요.
그녀의 입은 참 어이없는 말을 뱉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그런 말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야! 이제와서 애미 행사라도 할 참인가?!
- 제가 모시는 분께서 근자에 지아비를 여의셨어요. 그 분께는 후사도 없으셔서 후겸이를 데려다 양자로 삼으면..
아무리 못한다 해도 일단 양반 신분의 그녀가 모시는 사람이라..분명 높은 신분일것이다. 최소한 그녀보다는 더... 허나, 그렇다고 멀쩡한 부모있는 자식을 양자로 보낼 수는 없다.
- 허~ 지금 멀쩡히 애비,애미 있는 자식을 양자로 주자는 말인가?
- 그 분은 옹주마마십니다. 후겸이가 그 댁으로만 입적되면 피해다닐 필요도, 숨을 필요도 없습니다. 신분이 높아져 원할 때에 언제든 관직에 나갈 수 있어요. 하지만, 이곳에서 살아가면 기껏해야 어부밖에 더 됩니까?
- ..그래서? 지금 후겸이를 데려가겠다는게 그 이유인가?
- 실은 제가 후겸이를 곁에 두고 보고 싶어요. 애미로써 그 동안 떨어져 지낸 시간만큼 아니보다 많이 후겸이와 함께 있고 싶어요.
그녀의 애원을 무시하며 뒤돌아선 그의 귓가에 ‘털썩’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돌아보았을 때 아내가 주저앉아 빌고 있었다.
- 부탁이예요. 자식을 위해서잖아요? 후겸이를 위해서예요.
- .......
- 그 아이가 이곳이 좋다하던가요? 이곳에서 어부질을 하며 평생을 살겠다하던가요?
- .......
- 아이에게 최소한 자신의 인생을 결정할 권리는 주어야죠. 무조건 아비 밑에서 어부질을 배우라니... 아이에게 직접 말할 기회라도 주세요. 네? 부탁이예요. 제발.
그는 한숨이 나왔다. 후겸이는 애미를 따라갈 것이 분명하였다. 늘 어촌이 불만이던 아이였다. 따라갈 것이다. 분.명.
그 때 였다. 바닷가에 있을 줄만 알았던 아들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 저는 어머니를 따라가겠습니다.
아들은 아마도 방금의 이야기를 들어버린듯하다.
- 어머니가 모시는 옹주마마의 양자가 되겠습니다.
- 후..후겸아...
침통한 아버지는 보이지 않는지 다부진 눈으로 아비를 째려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을 부르는 애미에게로 발걸음을 하는 그의 아들 정.후.겸. 그동안 아들을 얼마나 잡아메어왔던가. 그 노력을 져버리고 아들은 기어코 피비린내 가득한 세상으로 가겠다한다.
왕실의 사람이 되는거 좋겠지. 허나, 그만큼 재물이되기도 좋은 존재가 왕실사람이 아니던가. 온갖 유혹이 범람하는 곳에 자신의 아들을 보내야한다. 생각하니 더욱더 침통해질 수 밖에 없었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후겸을 본 이화는 조심스레 아들을 감싸안았다.
결국 아들은 어미의 손을 잡고 한양으로 향하였다. 새로운 세상으로 간다는 들뜸과 아비의 뜻을 꺾고 자신의 길을 펼친다는 것에 기뻐하며 떠나갔다.
[ 한양, 화완옹주 사가 ]
- 그래, 이 아이가 그 때 말한 아이냐?
아름다운 외관의 화완옹주는 후겸과 이화를 훑어보고는 살짝 치켜올라간 눈꼬리를 사르르 접어가며 미소지었다.
- 내 후사가 없어서 걱정이 많았는데 이제 한시름 덜겠구나. 영특하게 생긴 아이야, 이름이 무엇이냐?
- 정가 후겸이라 하옵니다. 마마.
- 너는 나의 아들이 될것이니. 이제부터는 어머니라 부르거라.
- 네. 어..머님.
- 너는 누구보다 영악해져야 할 것이야. 나는 미련한 곰을 키우려 널 양자로 부른 것이 아니다. 이 조선땅에서 머리로 너를 따라올 자가 없을 만큼은 되어야할 것이다.
- 감히 아뢰옵니다. 소자 어머님을 위해 저 하늘의 달도 가려 없앨 정도의 든든한 자식이 되겠사옵니다.
- 그녀석 대답한번 당차구나. 남아일언 중천금(男兒一言 重千金)이라 하였느니. 그 입에서 지껄인 말에 어김이 있을시 용서 없을 것이다.
말을 끝낸 옹주는 여자답지 않게 크게 웃으며 손짓으로 그만 물러가도 좋다는 뜻을 보였다.
그 뒤 화완옹주가 한 사내아이를 양자로 들였다는 이야기는 궁궐에 파다하게 퍼졌고, 외로웠을 옹주를 걱정하던 영조는 크게 칭찬하며 기뻐하였다. 후겸은 옹주의 아들로 내놓아라는 스승에게서 정치와 온갖 지식을 배웠으며, 그 영특함으로 옹주뿐만 아니라 영조의 눈에까지 들어 총애를 받았다. 그리고 약관 15세 장원봉사로 관직에 본격적으로 나서며 그의 야망은 날개를 펴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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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은 신분제가 엄격한 나라였습니다. 서인인 후겸의 아비와 양반인 이화. 이 둘은 결혼도 하지 않은 양반댁 규수가 임신을 하였고, 그 상대가 서인남자였으니 문제가 심각하였죠. 정절을 중시하던 유교의 나라였기에 이화는 자결을 강요받아 죽고, 후겸의 아비 역시 죽음밖에는 길이 없었을겁니다. 그래서 둘이 도망을 가서 아는 사람없는 허름한 어촌이 터를 잡고 살아가게 된것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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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빛과 그림자에서... 음침하지만 야망찬 후겸의 어린시절-옹주의 양자가 되기까지의 이야기였습니다. ;
이 소설에서 달과 빛과 그림자가 각각 상징하는 인물은 아래와 같습니다.
달(月) : 이산(정조), 빛(光) : 홍국영, 그림자(影) : 정후겸
이렇게 3명이 주인공인 소설입니다. 왜 정조가 달이냐 함은 그 자신이 왕은 달과 같아 온누리(백성)에 평등히 비추어야한다 하였습니다. 그 말에서 따와서 달을 상징화하였습니다. ;
홍국영과 정후겸은 각각의 대립하는 이미지를 형상화하여 빛과 그림자로 정하였어요~;
앞으로 달과 빛의 어린시절 들어가기도 있는데..;; =_ =; 지루해서 큰일입니다. 허허;
소설은 각 자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흘러갑니다;; 허헛;;
초반에만 써놓고 안쓰다가 갑자기 올릴 결심을 하고 휘갈긴 후 점검도 안했더니; 그저 걱정이 앞서지만..
그래도 내 블러그인데 ;; 누가 뭐라하리 싶어서리..orz..;ㅁ ;
혹, 보신 분이 계시다면 살풋 무시하셔도 괜찮습니다. -_ ㅠ 좋은 하루 되세요-
# by | 2008/01/14 20:11 | 달과 빛과 그림자


